그림책으로 마음을 지탱하고 싶은 날이 종종 있다. 아이들은 그림책을 통해 한글을 배우고 숫자를 익히고 그리고 세상의 이치를 접하곤 한다. 반면 어른들은 그림책을 통해 복잡한 생각을 청소하기도 하고 삶의 성찰을 얻기도 한다. 그림 속 한 두 문장에 토닥토닥 작은 위로를 받기도 하며, 때로는 울컥 울음이 터지기도 한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전 세계 200만명 이상이 코로나로 목숨을 잃었다. 우리 나라도 1,000명 넘게 사망했다. 신규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가 매일 오전 브리핑되고 있다. 사망자 숫자에 놀라다가, 걱정하다가, 이내 무덤덤해지곤 한다.
얼마 전 OBS채널에서 감염병 재난 영화 ‘Contagion(2011)’을 상영했다. 영화를 보며 TV 상단에 떠 있는 국내 코로나 발생 현황판을 보았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느낌이 들었다.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렇게 그림책 한 권을 짚어 들었다.
다니카와 슌타로 시 l 비룡소
책 표지엔 평범하고 고즈넉한 우리 일상이 그려져 있다. 햇살 좋은 파란 날, 공동주택마다 이불 빨래가 잔뜩 널려있다. 엄마 곁을 아장아장 걷는 아기, 이웃과 인사하는 주민들, 베란다에서 운동하는 사람, 아들 딸과 이야기하는 엄마….이들을 가로질러 고양이 한 마리는 느긋하게 외출 중이시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표지 그림 한 컷만으로도 마음은 벌써 일상을 되찾은 듯 하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 마다 코로나 이전에 우리가 누렸던 평범한 일상들이 아련한 듯 그림책 속에 녹아 든다.
아이들로 가득한 동네 놀이터
카페에서 여유를 부리며 차를 마시는 손님들
과일가게 주인과 흥정하는 아주머니
할아버지와 생일상을 같이 하는 가족들의 소박하고 행복한 일상들
학생들의 등교하는 모습 마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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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은 일본의 국민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살다’라는 시를 바탕으로 했다.
“살아 있다는 건, 지금 살아있다는 건 목이 마르다는 것, 너와 손을 잡는 것, 울 수 있다는 것, 웃을 수 있다는 것, 화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에도 새는 날개짓하고 그네는 흔들리고 지구는 돌고 있다는 것…”
너무도 당연해 미쳐 생각해보지 않았던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성찰. 그림과 글은 평행을 달리듯 전개되면서 소소한 일상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되돌아보게 한다. 살아 있다는 건 그런 것이다. 울고 웃고 화내고 사랑할 수 있는 것. 살아있다는 건 그 자체로 가슴 뛰는 일이다. 고마운 일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던 시절에 읽었어도 이토록 가슴이 쿡쿡 쑤셨을까? 죽음이 익숙한 요즘. 그림책 한편의 울림이 묵직하고 크게 느껴졌다.
시를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 때마다 과거의 기억들이 소환된다. 지난 해 여름날 뜨겁게 울어 대던 매미 소리가 그립다. 오래 전 돌아가신 아버님의 온화한 얼굴이 사무치게 떠오른다. 그저 함께 있어 좋았던 가족 여행. 행복이란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존재하는 바로 ‘지금’이다.
부모님을 만날 수 있는 지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지금
행복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지금
고맙다고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지금
살아있는 ‘지금’
모두가 일상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이제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으며, 우리는 새로운 ‘뉴노멀’을 준비해야 한다고도 이야기한다. 코로나가 휩쓸고 있는 혼란과 불확실성의 시대. 하지만 코로나는 우리에게 잊고 있던 일상의 가치를 깨닫게 해 주었다. 심지어 일상이 파괴되어 버린 힘들고 고단한 지금 이 순간 역시 소중한 우리 삶의 일부인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되는 ‘살아 있다는 건’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