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인류와 함께해 온 예술 매체인 '연극'은 생로병사의 희로애락을 풀어내는 드라마이자 치유의 장이 였다. 그래서일까? 환자와 병원은 연극의 주요 소재였다. 등장인물을 설명하는 중요한 메타포가 되기도 하고 드라마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연극 속 질병과 환자의 이야기를 넘어 질병 그 자체가 가지는 의미에 오롯이 집중한 극단이 있다. 우리 사회를 투영한 ‘질병’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고, 서사가 주는 깊은 몰입을 통해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극단 2악장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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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연극 시리즈를 선보이는 '극단 2악장' (사진 제공 : 극단2악장)
질병 자체를 주제로 다룬 연극은 신선하다. 의학 연극을 정의한다면?
연극은 인간의 본질에 질문을 던지는 장르다. 의학 역시 ‘이 사람이 왜 아프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 의학과 연극이 맞닿아 있다고 본다. 의료 콘텐츠를 다루는 작가 일을 해 왔는데(박현정 대표), 자연스럽게 질환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고, 의사들이 어떻게 환자를 치료할지 관점을 세우는 걸 지켜보며, 의학에 관심이 커졌다. 내가 가장 관심이 많은 ‘의학’과 ‘연극’을 엮어보자고 생각해서 의학 연극이 탄생한 거다. 의학 연극은 한마디로 “의학을 주제로 한 극”이라 볼 수 있다.
소재 발굴이 쉽지 않을 듯하다. 연극 소재를 어디서 어떻게 찾는가?
극단 2악장의 첫 공연이 <자가면역질환>이었다. 로드맵 작가 일을 하며 접한 질환인데, 현대인에게 암 다음으로 가장 만연한 병이 자가면역질환이고, 아직도 원인을 밝힐 수 없는 다양한 병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좀 더 질환에 대해 공부를 하며, 현대 사회가 아픈 이유를 자가면역질환과 연결해봤고 그게 극단 2악장이 선보인 의학 연극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기 위해서 로드맵 작가 업무를 병행하며 3-4년간 병원에 근무하면서 현장 의료진의 목소리도 듣고, 의료진을 통해 전문적인 의학 지식에 대한 도움도 많이 받고 있는데 그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연극의 소재가 되는 듯하다.
어렵고 전문적이지 않을까 하는 편견이 있다. 관객분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의학 연극 자체가 생소하다 보니 극을 본 관객들은 병원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드라마처럼 이해하거나 환자를 주제로 한 극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공연을 보고 나면 ‘의학적 소재를 연극으로 발전시킨 점이 참신하다’라는 리뷰가 많다. 기존 연극에서 다루지 않는 소재라 새로운 재미가 있지 않은가 싶다. 매해 공연이 계속되며 점점 의학 연극 시리즈에 관심을 가지고 다음엔 또 어떤 질병이 다루어질까 궁금해하시기도 한다.
또 의학을 잘 아는 종사자들이 극을 보는 재미도 남다른 듯하다. 본인의 일상적인 생각들을 엮어가며 직접 소재를 추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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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극단 2악장이 선보인 3번째 의학 연극은 ‘용종절제술’이다.
부유한 환경에서 삶에 대한 고민도 나에 대한 돌봄도 없이 살아 온 환자가 수면 대장내시경 검사 중 꿈속에서 몸 안에 있는 악성 용종과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실제 용종제거시술 장면 등을 활용해 사실적으로 풀었다. 인격화된 악성 용종이 전하는 “삶은 무조건 아름답다”는 메시지가 많은 질문을 던진다.(사진 제공 : 극단2악장)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 여기는 용종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색달랐다. 어떤 의도인가?
작가 일을 하며 기획한 콘텐츠의 주제가 “암도 독립된 생명체다” 였다. 암을 동정하고 감정적으로 보자는 게 아니라 암세포가 독립된 생명체로 살아남기 위해 정말 처절하게 애를 쓰며 변이와 전이를 하고, 그래서 치료하기 힘들다는 게 요즘 정립되고 있는 학설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암 세포는 내 삶을 해치는, 제거하고 박멸해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하는데, 암도 실제로는 생명을 가지고 있고, 만약 그 입장에서 우리를 바라본다면 내 삶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극단 2악장이 생각하는 우리 사회에서 암세포를 만드는 요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이번 작품에서 ‘환자’는 재력이나 능력은 부족함 없이 살지만 삶에 감사할 시간 없이 스트레스와 마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루하루 생각할 여유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하는 캐릭터인 셈이다. 자신의 몸을 돌볼 기회가 없는 사회 구조 때문에 개인은 내 몸속에 용종을 키워내고, 그 존재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연극을 기획하며 주제나 메시지 측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다면?
의학도 중요한 테마이지만 우리는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연극이라는 장르가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생각했을 때, 보는 사람들이 자기 일상에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질병과 치료도 정확한 진단과 내가 ‘아프다’라는 인식이 먼저 있어야 하듯이, 일상에서 ‘내가 사는 삶이 제대로 가고 있는가? 아픈 건 아닐까? 그렇다면 왜 아픈 걸까?’ 이런 질문을 던지며 생각하도록 돕는 게 연극이다. 의학 연극을 위해서 의학 공부를 계속하면서 일상과 밀접하게 맞닿을 수 있는 소재를 찾으려고 한다. 의학과 사회의 맞닿는 지점을 발견하고 깊이 들어가 보는 것이다.
앞으로 극단 2악장의 활동 계획은 어떠한가?
극단 2악장은 지금 건강의 의미를 더 확장해가려는 시기다. 의학 연극을 지속해 나가면서 관객을 만나는 방법에서 수단을 더 넓히고자 한다.
우선 연극을 만드는 과정, 배우와 스태프의 일상뿐 아니라 의학 종사자와 예술인의 만남의 장을 영상 콘텐츠로 풀어내고 싶다. 사람들이 의학과 관련한 정보, 메시지를 더 이해하기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극적 요소를 접목한 의학 키트를 만드는 것도 준비하고 있다.
의학 연극을 하는 극단 2악장만이 전할 수 있는 메시지도 고민하고 있다. 올해 공연계가 코로나 이슈로 아주 어렵지 않았나? 힘들지만 공연을 하는 사람들 보는 사람들 건강을 지키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의학 연극을 선보이는 극단으로서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지침과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킬 뿐만 아니라 <안전하고 건강한 무대를 위한 약속, I swear> 프로젝트를 통해 소극장용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수립하여 배포하는 것도 진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2021년에는 공연 수를 더 늘려, 관객과 연극으로 만나는 접점도 넓힐 계획이다. <대한면역결핍국>, <신전없는 사막> 등의 새로운 이야기가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교항곡의 2악장은 각각의 악기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화음을 이뤄내는 정점의 순간으로 여겨진다. 의학 연극 시리즈라는, 의학과 연극의 선을 넘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삶과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극단 2악장. 건강에 대한 의미를 확장해 가는 극단 2악장의 또 다른 '2악장'을 기대해 본다.